겨울 여행을 위한 단 하나의 선택, 경주 양동마을
가장 한국다움 찾아가는 겨울 여행 최적지
한파가 기승을 부리고 몸이 움츠려드는 겨울이다. 하지만 겨울 특유의 낭만적 분위기로 추억쌓기에는 더없이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특히 한 해를 마무리 하기 좋은 겨울 여행은 요란스럽지 않고 운치가 있으며 감동이 있는 곳이라면 금상첨화다.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경주는 조용하고 낭만적인 겨울여행의 적격지로 안성맞춤이다.
고대 신라 왕국의 천년수도였는 경주는 도시 전체가 지붕없는 노천 박물관으로 발길 닿는 곳마다 수많은 역사유적지와 문화재로 넘쳐난다. 따라서 가장 한국다운 도시를 꼽으라면 단연 경주가 으뜸이다. 최근 전주 한옥마을이 각광을 받는 이유도 바로 한국다움을 찾는 갈망에서이다. 신라 유물과 유적으로 대표되는 경주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한국적인 마을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인 양동마을이 있다.
경주 양동마을은 다소 상업적이고 퓨전한 면이 없지 않은 다른 한옥마을들과는 달리 때 묻지 않은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오백여년 넘게는 세월동안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종가가 삶과 문화,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유서 깊은 전통의 역사마을이 주는 색다른 감성과 고요한 정서는 겨울여행의 또 다른 추억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전통 민속마을 중 가장 큰 규모와 오랜 역사를 가진 조선시대 대표적인 동성(同姓)취락으로 고색창연한 54호의 고와가(古瓦家)와 이를 에워싸고 있는 고즈넉한 110여 호의 초가로 이루어져 있다.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와가와 초가의 낮은 토담길 사이를 걸으며 긴 역사의 정취를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
오랜 삶을 이어온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마을답게 서백당, 무첨당, 관가정, 향단 등 수백년된 마을고택에는 작은 건물 하나에도 고유의 이름이 있고 숨은 뜻이 있어 흥미를 자아낸다. 예컨대 월성 손씨 종가인 서백당(書白堂)은 하루에 참을 인(忍)자를 백번 쓴다는 뜻을 갖고 있으며, 여강 이씨 종택인 무첨당(無忝堂)은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의미이다. 한 눈에 들어오는 형산강의 경관을 품어 안은 관가정(觀稼亭)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이 자손들이 커가는 모습을 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마을의 풍수는 마을의 뒷배경이자 주산인 설창산의 문장봉에서 산등성이가 뻗어내려 네줄기로 갈라진 등선과 골짜기가 물(勿)자형의 지세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산의 형세가 개가 누워서 젖을 먹이는 형상으로 구유낭형이라고 한다. 한편 가옥의 구성은 여름에 고온다습하고 겨울에 저온건조한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건물 형태와 전통 유교 예법을 따르고 있다.
씨족 마을의 대표적인 구성요소인 종택, 살림집, 정사와 정자, 서원과 서당, 그리고 주변의 농경지와 자연경관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유형 유산과 관련한 의례, 놀이, 저작, 예술품 등 수많은 정신적 유산들을 보유하고 있다.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된 양동마을 안에는 국보인 통감속편과 무첨당, 향단, 관가정, 손소영정 등 보물 4점을 비롯한 22점의 국가 및 시도 지정문화재가 있다. 이외에 다양한 소장 문화유산들은 양동마을 유물전시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양동마을을 처음 방문한다면 전시관을 먼저 찾을 것을 추천한다. 입장은 무료로 동절기에는 오후 5시까지 개관한다.
익숙한 여행지에서 의외의 매력을 발견하는 것이 여행의 묘미라면 경주 양동마을은 그 즐거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신라시대의 찬란한 문화유산이 가득한 경주에 조선시대 전통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에 놀랄 것이다.
마을 곳곳에서 조선 초기부터 말기까지의 다양한 전통 가옥들을 만나는 탐방 코스는 일곱 개의 코스로 구성되며, 첫 번째 코스인 하촌 방면은 양동마을 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을 어귀 산기슭의 안락정을 시작으로 이향정, 강학당, 심수정을 둘러보는 데 약 20분이 소요된다.
두 번째 코스인 물봉골 방면에서는 양동마을을 한눈에 바라보며 마을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보물 제411호로 지정된 무첨당을 시작으로 대성헌과 물봉고개, 물봉동산, 영귀정, 설천정사를 따라 약 1시간여를 걷게 된다. 대성헌을 지나 만나게 되는 물봉고개와 물봉동산까지는 초가의 흙담 뒤로 펼쳐진 나지막한 황톳길 덕분에 한층 걸음이 가볍다.
세 번째 코스인 수졸당 방면은 경산서당, 육위정, 내곡동산, 수졸당, 양졸정을 따라 30분간 이어지는데, 그림 같이 펼쳐지는 고택들이 예스런 멋을 선사한다. 경산서당에서 수졸당 가는 길에 위치한 뒷동산은 소나무가 울창해 진한 소나무향이 가슴 깊숙이 스며든다.
네 번째 코스인 내곡 방면은 근암고택, 상춘헌, 사호당, 서백당, 낙선당, 창은정사, 내곡정 등 안채와 사랑채가 분리된 독특한 가옥들을 만나볼 수 있으며, 다섯 번째 코스인 두곡방면으로는 두곡고택, 영당, 동호정을 30분 가량 가볍게 둘러보게 된다.
여섯 번째 코스는 향단 방면으로 정충비각에서 향단, 관가정, 수운정에 이르기까지 1시간 거리를 둘러보는 코스로 조선시대 청백리들의 기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건물 앞쪽에 아름드리 솟아난 향나무가 인상적인 향단은 외관상 무척 화려하고 독특한 구조를 띠고 있다. 관과정은 격식을 갖추어 간결하게 지어져 사대부 가문의 기풍을 엿보기에 모자람이 없다.
끝으로 일곱 번째 코스는 양동마을을 대표하는 가옥인 서백당, 무첨당, 향단, 관가정을 2시간 가량 여유롭게 둘러보는 코스로 이뤄져 있다.
여행의 완결을 위해서는 양동마을에서 7km 정도 떨어진 옥산서원도 둘러볼 만하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로 추앙받는 회재 이언적 선생의 학문을 기리는 단아한 옥산서원은 서원 앞으로 흐르는 옥산천 주변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특히 회재 선생이 말년을 보낸 독락당(보물413호)은 자연과 어우러진 한옥건물이 보여주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구효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