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박물관, 신라학 강좌 총서 ‘신라의 대외관계’ 발간

국제관계의 시각에서 신라 역사를 다양하고 흥미롭게 조명

도서사진국립경주박물관(관장 민병찬)은 신라학 강좌 총서 ‘신라의 대외관계’를 발간, 배포한다.

경주박물관은 신라 문화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신라학 강좌’를 운영해오고 있다. 강의 내용을 함께 하기를 희망하는 관 내외의 요망에 부응하기 위해 신라학 강좌를 토대로 강좌 내용을 책으로 출간했다.

3책 1세트, 총 460면의 이 책은 역사·고고·미술사와 자연과학 등 다방면의 연구자가 집필한 19개의 주제로 구성됐으며, 7월 초순 공공도서관과 대학도서관 등에 배포될 예정이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면서도 최신 연구 성과를 망라한 이 책은 신라의 대외관계와 국제교류를 다룬 전문 개설서여서, 독자들은 이 책을 벗 삼아 경주박물관의 신라학 강좌를 안방에서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신라학 강좌 총서 신라의 대외관계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신라와 주변 여러 나라와의 관계는 물론, 널리 실크로드를 통한 세계와의 문화 교류를 담았다.

3권 1세트, 총 460면의 이 책은 [총론], [1부 신라와 삼국], [2부 신라와 동아시아], [3부 신라와 실크로드]로 구성됐다.

역사, 고고, 미술사와 과학 등 다방면에서 국내를 대표하는 원로·중진과 신예가 망라된 18인의 전문연구자가 다채롭고 흥미로운 시각에서 집필한 융합적 저술 집필진은 역사학자 노중국·이영호 교수(모두 전 한국고대사학회 회장) 등 7인, 고고학자 강현숙(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박천수 교수(경북대학교) 등 5인, 미술사학자 임영애 교수(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등 5인과 자연과학자 김규호 교수(공주대학교) 등 다방면의 연구자로, 원로에서 중진, 신예에 이르는 18인으로 구성됐다.

▲ 후진국이자 약체였던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룩한 원동력은 외교력
한평생 신라사를 연구해온 원로 학자 주보돈 교수(경북대학교 명예교수, 전 고대사학회 회장)는 삼국시대 후진국이자 약체였던 신라가 선진국이자 강국이었던 고구려와 백제를 제치고 삼국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을 외교로 꼽았다. 약체로서 오랜 세월 경험에서 축적된 합종연횡의 외교력이 열매를 맺은 것이라 평했다.

▲ 경주 식리총 금동신발은 백제 제작, 공주 송산리 허리띠장식은 신라 제작으로, 나제동맹기의 유산
중견 고고학자 김낙중 교수(전북대학교)는 출토유물 비교를 통해 신라와 백제의 교류를 풀이했다. 경주와 부여 등 신라와 백제 왕도의 발굴 현장에서 십수년간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허리띠장식·귀걸이·대도·기와 등 다양한 유물 비교를 시도했다. 금동신발은 나라마다 특징이 확연한데, 경주 식리총 금동신발은 다른 신라 출토 신발과는 백제제품으로 5세기 후반 나제동맹기 양국 협력의 분위기를 보여준다고 보았다.(붙임4의 사진1,2) 공주 송산리 4호분 허리띠장식은 경주 금관총 출토품과 유사한 신라제품으로(붙임4의 사진3,4), 역시 나제동맹의 산물로 설명했다.

▲ 귀중품 유리 제품에는 신라 정치사회의 역학관계가 숨겨져 있다
신예 학자 박준영 연구원(전 한신대 박물관)은 신라의 유리구슬들을 분석한 자료들을 연구해 환옥(丸玉)은 포타쉬유리, 소다유리 중 알루미나계 유리는 동남아시아 바닷길을 통해 신라에 들어왔다고 한다. 또 광범하게 분포하는 나트론계와 플랜트 애쉬계는 육로로 들어왔다고 추정했다. 소국 시절에는 여러 소국이 각각 유리구슬을  수입했지만, 사로국이 신라로 대두하면서 수입유통망이 신라에 의해 장악됐다고 했다. 김도윤 학예사(국립경주박물관)는 화학성분비 분석을 토대로 황남대총의 봉수형 유리병(붙임4의 사진5)이 중앙아시아에서 실크로드를 통해 신라로 유입됐다고 서술했다.

▲ 원성왕릉 무인상은 중앙아시아인을 직접 보고 만든 것이 아니었다
20년간 이 문제에 천착해온 임영애 교수는 원성왕릉 입구에 우락부락한 무인상이 이전의 다른 연구에서 보아온 중앙아시아인이 아니라 불교의 금강역사라는 지론을 도상을 활용해서 알기 쉽게 풀이했다. 원성왕릉 무인상의 옷이 호인의 복장이 아니라 사천왕의 갑옷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사찰 입구에 금강역사를 세워 수호신으로 삼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원성왕릉 역시 금강역사로 보았다. 중앙아시아인을 직접 묘사한 것이 아니라, 당시 세계제국 당나라가 만든 표준화된 동아시아 불교 미술의 영향 아래의 작품이라고 해석했다. 이다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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