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상의 문화유산둘러보기 ‘신라왕궁을 방어한 월성해자’

김호상의 문화유산둘러보기 ‘신라왕궁을 방어한 월성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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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월성(반월성)의 복원된 석축해자(2014. 11)

설명) 신라의 왕궁으로 가장 오랫동안 이용되었던 월성의 방어용 못[池]인 해자의 일부를 복원한 것입니다. 이 석축해자는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방어용 못을 통일된 왕궁의 조경 정비차원에서 만들어 진 것으로 판단되며, 처음의 방어용 못은 하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해자(垓字)는 성벽 외곽에 파 놓은 방어용 못, 또는 물길로 적의 기본적인 접근을 막거나 이를 경계로 공간을 구분하기 위해 설치된 시설물이다. 이것은 성벽을 쌓기 위해 필요한 돌과 흙을 먼 곳에서 가져오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성벽 둘레에서 흙과 돌을 채취하여 성벽을 쌓은 후 그 구덩이를 그대로 이용하거나 물로 채워 성의 방어시설로 이용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곽의 조경을 아름답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부수적인 기능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해자시설은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환호가 해자와 같은 성격의 시설물이다. 신라에서는 월성(月城), 고구려에서는 국내성(國內城), 백제에서는 몽촌토성(夢村土城)에서 해자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월성(반월성)주변의 해자는 크게 3가지의 유형으로, 월성 성벽의 남쪽을 흐르는 하천을 그대로 이용한 자연해자, 성벽 둘레를 따라 평면 부정형의 못을 파고 냇돌로 호안을 축조한 연못형 해자, 그리고 연못형 해자를 메우고 화강암을 다듬어 정연하게 쌓은 석축해자(石築垓字)가 있다.

자연수로를 해자로 이용한 국내성과 외곽에 환호형의 해자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 몽촌토성과는 달리 월성의 연못형 해자는 동, 북, 서편에서 확인되었는데 성벽 둘레를 따라 일정한 폭을 유지하면서 서로 독립된 연못이 동-북-서로 단을 두고 연접하여 있다. 이러한 구조는 매우 독특한 구조인데, 그 이유는 월성의 주변지형이 동-북-서로 갈수록 심한 경사로 인해 일반적인 수로(水路) 형태의 해자로는 수위를 조절할 수 없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또 성벽이 높은 지역에서는 해자의 폭이 넓고, 깊이가 깊어 현 성벽과 해자의 축조가 동시에 이루어졌음은 물론, 성벽을 높게 쌓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흙의 양이 더 필요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월지(안압지)앞에 일부구간에 복원된 석축해자는 왕궁이었던 월성이 삼국통일 이후 군사적인 성격보다는 궁궐의 조경 정비 차원에서 시설된 해자이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이 석축 해자의 하부에는 처음 월성을 쌓을 때의 거대한 연못형태의 해자들이 성벽의 주변을 따라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다.

월성해자는 1984년부터 발굴조사 및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조사를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도 발굴조사와 정비복원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자의 많은 부분은 현재까지도 지하에 늪지로 남겨져 있고, 이 늪지에는 고분유적과 다른 유적에 비해 신라인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알 수 있는 다양한 유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월성해자는 실로 신라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보물창고이기에 앞으로도 많은 노력과 정성을 들여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복원이 이루어진다면 역사도시 복원의 대표적인 유적이 되리라 생각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1984년에 시작한 월성해자, 1980년에 시작한 신라왕경 발굴조사가 30년이 지났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겠지만 그 중요성이 알려지지 않고 묻혀 있다는 점이다. 신라왕궁이었던 월성의 발굴이 지난 12월 12일 발굴조사를 시작할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착수에 앞서 문화재청, 경상북도, 경주시 공동으로 성대하게 고유제를 지낸바 있다. 부디 신라왕궁이었던 월성의 발굴조사가 앞서 진행되었던 신라왕경 발굴조사와 월성해자 발굴조사의 과오를 다시 범하지 않기를 신라왕경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하게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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